기사와 캠페인을 넘어, PR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기업의 PR 활동을 평가할 때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지표를 봅니다. 얼마나 많은 기사가 나왔는지, 콘텐츠가 얼마나 확산됐는지, 캠페인이 얼마나 주목받았는지, 브랜드 인지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살펴봅니다.

이러한 지표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이 직면한 문제와 PR의 역할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더 이상 하나의 시장에서 특정 이해관계자 그룹만을 상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이 얼마나 투자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지, 국내 산업과 경제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봅니다. 규제기관은 시장 질서와 소비자 보호, 기업의 책임과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기업 활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소비자는 가격과 제품의 효용뿐 아니라 기업의 태도와 신뢰도까지 함께 평가합니다. 투자자와 본사는 성장 가능성과 리스크, 투자 대비 수익을 봅니다.

결국 모두 같은 기업을 바라보고 있지만, 각자가 기업에 던지는 질문은 다릅니다. 이것이 오늘날 PR이 단순히 기업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하나의 메시지만으로 모두를 설득할 수 없다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일관된 핵심 메시지가 중요했습니다. 기업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하고, 미디어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복적으로 알리고 확산하는 것이 PR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가 다양해지고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하나의 메시지만으로 모든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우리는 가장 혁신적인 AI 플랫폼을 제공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규제기관이 궁금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를 먼저 볼 것입니다.

정부는 이 기술이 국내 산업과 인재 육성, 관련 생태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궁금해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조금 더 현실적인 질문을 합니다. 이 기술을 사용했을 때 내 삶이 실제로 얼마나 편리해지는지, 내 개인정보는 안전하게 보호되는지를 생각합니다. 투자자는 또 다른 관점에서 봅니다. 지금의 기술적 우위가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과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결국 기업은 하나의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해관계자가 그 사업을 바라보는 이유는 모두 다릅니다. 따라서 오늘날 PR의 역할은 하나의 메시지를 모든 사람에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 전략 안에서 각 이해관계자가 기업을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각자의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명분’입니다.

명분이라고 하면 기업에게 유리한 논리를 만들어내거나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PR에서 말하는 명분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가치와 이해관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적 맥락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것입니다.

결국 이해관계자는 기업을 향해 몇 가지 단순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내가 이 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왜 이 기업을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이 기업의 사업과 성장을 지지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가.

PR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기업과 사회 사이에서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 글로벌 전략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한국에서 사업하는 글로벌 기업에게 중요합니다.

글로벌 기업은 대부분 정교한 글로벌 전략과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사에서 만들어진 전략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에는 기업의 사업적 의사결정 자체가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공급망 재편, 기술주권과 경제안보 같은 지정학적 변화는 기업의 투자와 기술 도입, 시장 진출과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에는 순수한 경영 판단으로 받아들여졌던 결정이 이제는 국가와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합니다.

경제적 민족주의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글로벌 기업에게 한국에서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가만큼이나 한국의 고용과 산업, 연구개발과 관련 생태계에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책임이 없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도의적인 책임을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CEO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얼마나 빠르고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지, 끝까지 문제 해결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기업에 대한 신뢰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기업의 국적도 특정한 국제정세나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갑자기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플레이북은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한국 시장의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Public Affairs의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Public Affairs를 단순히 정부나 국회를 상대하는 대관 업무로 이해해서는 부족합니다. 기업의 사업 전략을 한국의 정책과 산업,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접점을 만들어가는 역할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이 한국에서 사업할 수 있는 법적인 자격을 넘어, 사회가 그 기업의 존재와 사업 활동을 받아들이는 ‘License to Operate’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봐야 한다

기업이 직면하는 위험의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지정학, 경제, 기술, 정책, 사회, 문화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한 영역에서 발생한 변화가 다른 영역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업상의 위험이나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AI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일자리 문제로 이어질 수 있고, 이것이 사회적 논쟁과 규제 논의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결국 기업에 대한 신뢰와 사업 환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정치적 변화가 공급망에 영향을 주고, 다시 투자와 고용 문제로 이어지면서 소비자 여론까지 움직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발생한 문제를 잘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직 문제가 되지 않은 변화, 아직 리스크라고 부르지 않는 작은 신호를 먼저 발견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변화는 무엇인지, 이 변화가 다음에는 어디로 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기업의 매출과 투자, 시장 접근과 사업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커뮤니케이션 파트너는 클라이언트가 질문한 것에만 답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클라이언트가 질문하지 않은 질문을 먼저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와 정책, 경제, 기술, 문화, 소비자 여론과 산업의 변화를 함께 보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작은 변화들을 연결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단순한 정보나 보고서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 Relationship Capital은 ‘인맥’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PR 에이전시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Relationship Capital, 즉 관계 자본입니다. PR 업계에서 관계를 이야기하면 종종 ‘인맥’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로비와 비슷한 의미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 자본은 누구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필요한 순간에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고, 중요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뢰가 얼마나 축적되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기자와의 관계도 단순히 기사를 부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문제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지, 기자들이 어떤 관점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는지, 사회적 논의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규제기관, 협회와의 관계 역시 기업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정부와 산업계가 실제로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를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통해서는 아직 언론이나 정책의 영역으로 올라오지 않은 새로운 논쟁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의 출발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접점을 만들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위에서 기업과 이해관계자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의미 있는 대화를 만들어가면서 장기적인 신뢰가 형성됩니다.

관계를 당장의 기사나 성과를 얻기 위한 거래로 소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Relationship Capital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고 관리해야 하는 PR 에이전시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 PR 에이전시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PR 에이전시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전통적인 PR 에이전시는 미디어 관계와 콘텐츠, 캠페인, 실행에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기업의 사업 환경과 정책, 이해관계자의 변화를 충분히 깊게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경영 컨설팅 회사는 데이터와 분석, 전략과 비즈니스 프레임워크에는 강하지만 실제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의 감정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파트너는 이 두 영역의 장점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전통적인 PR 에이전시보다 전략적이어야 하고, 경영 컨설팅 회사보다 사람과 사회를 움직이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정책과 산업의 변화를 읽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기회를 먼저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경영진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복잡한 사업 이야기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만들고, 기업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업계, 커뮤니티 등 다양한 목소리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략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앞으로의 Communications Consultancy가 갖춰야 할 경쟁력은 비즈니스를 읽는 능력, 관계를 만드는 능력,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창의적인 실행력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분석만 잘해서도 부족하고,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도 부족하며,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 실제 이해관계자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은 비즈니스 가치로 연결됩니다.

| PR의 최종 결과는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그렇다면 PR이 궁극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보도자료를 몇 건 배포했는지, 기사가 얼마나 나왔는지, 콘텐츠가 얼마나 확산됐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성과 지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PR 활동의 결과물이지 PR이 기업에 제공해야 하는 최종적인 가치는 아닙니다.

PR은 먼저 기업을 둘러싼 변화를 감지해야 합니다. 그 변화가 다음에는 어디로 이어질지 생각하고, 각각의 이해관계자가 왜 그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 위에서 기업과 이해관계자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과 공통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실제 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업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이 축적됩니다.

그 결과 기업은 두 가지 중요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하나는 평판 보호입니다. 위험을 먼저 발견하고 기업의 평판과 신뢰를 지키며, 규제와 사회적 변화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License to Operate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장입니다. 기업이 사회와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고,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열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PR의 최종 목적은 더 많은 보도자료를 만들거나 더 많은 기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줄이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공통의 접점을 넓혀 기업이 사회 안에서 신뢰받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PR은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복잡해진 지금, 그 역할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기업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가치와 이해관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만나는 ‘명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명분을 관계와 대화를 통해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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